공중전화 by 애나

어릴 때 살던 아파트에 공중전화 박스가 있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디지털은 급변했고, 공중전화 박스는 군인들 외에는 필요치 않은 존재였다.
그러던 게, 얼마전 우리 아파트 입구에 뜬금없이 생겼다.
지나칠 때마다 전화를 걸까 말까 생각했다. 생각만으로 4개월정도 가 지났다. 지난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나지 못한 시간은 1년하고도 8개월이었기에. 그렇게 걸까말까를 반복해서 생각하던 중
내가 전화를 걸었던 것은 뜻밖의 날이었다.
날씨는 그냥 포근했고 소개팅이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막연함과 친구들의 성화에 그저그렇게 나간자리에서 마치 소개팅정석을 뇌와 몸에 심어놓은 듯 장착한 소개팅 기계같은 남자와 의미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쁠것은 없었다
파스타를 먹었고,애꿏은 물만 삼켰다, 서로를 포장하는 듯한 대화는 이어져 나갔고, 둘다 배려심돋게 차까지 마시고 헤어졌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눈에 띈 공중전화박스에
나는 참지 못하고 집으로 뛰어들어가 원피스와 구두를 벗어던지고 잠바를 입었다. 그리고 동전이 마땅치않아 저금통을 뜯어 십원짜리 몇개와 백원짜리 몇개를 주워들고 공중전화로 갔다. 얼만지 몰라 잠시 망설였지만, 그냥 무작정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었다
나보다 타인에게 친절했던 그는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아무말도 하지않은 것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던 이유였으리라.
무엇을 참지못해 전화를 걸었던 걸까 싶었으나 그냥 누군가를 만나고 나니 그사람이 줬던 사랑이 허전해서였을거라고- 짐작해본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냥 목소리만 듣자고 시작한 생각에 처음이 어려웠지 두번째는 망설일 이유조차 없었다
다음날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비슷한 시간에 전화를 걸었는데
여보세요를 몇번 반복하던 그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오기가 일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를 두어번 반복하고 그가 끊었다. 마지막전화에서는 직감적으로 그가 나임을 알았을 것이다.

마지막 전화를 걸었던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공중전화가 아닌 내 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않았다 곧이어 문자가 왔다, 미안하지만 전화하지말아달라고.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였다. 나를 계속 기다리겠다고 돌아오라고 말한건 그였다. 그럼에도 가지않았던 것은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런 그가 나를 거절한 밤이었다. 나를 계속 기다릴거라는 믿음은 진작에 깨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가슴한구석에는 어쩌면- 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남았을지도.

헤어지고 단 한번도 눈물이 나지않았고, 사진과 선물들은 정리하지않고 그자리에 뒀었다. 그를 언젠가는 다시만날거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그렇게 생활에 익숙한거처럼 그대로 두면 자연스레 잊혀질거라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거절의 문자를 받고나니, 실감이났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눈물이 몰려왔다. 사랑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는 너의 대답을 기대를.
이제 정말 끝이구나, 그 다정하던 눈빛은 이제 없구나 나말고 다른사람의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나는 아직 그사람을 사랑하는 구나 깨닫는데는 금방이었다. 아마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잡히지 않는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내가 잡을 수 없었던 것이었는데-
전화를 하지않았더라면, 그렇게 꼿꼿하게 도도한 척 하면서 착각속에 살았겠지만 나는 후회하지않아
비로소 그를 조금씩 내마음에서 내보낼 수있게 되었다.
그 밤 새벽. 반신욕을 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이렇게 나는 진짜 사랑을 찾지 못하고 보내버렸구나...하고.

누군가를  잊기까지, 누군가를 좋아하기까지 아주 오래걸리겠지
내 진심이 누군가에게 닿으려면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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